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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기자의 뉴질랜드 탐방기
제목 이동진기자의 뉴질랜드 탐방기
작성자 관리자 (ip:)
  • 작성일 2006-04-27 20:35:05
  • 추천 추천 하기
  • 조회수 531
  • 평점 0점

"나니아연대기"를  촬영한 뉴질랜드 남섬을 다녀간 조선일보 이동진기자의 글을 허락도 없이(?)

옮겨왔습니다.  내가 두고두고 볼려고 가져온거니까 한번 눈 질끈 감아주셈.

 

 

처음엔 자연만 봤다.

드넓은 목초지와 끝없는 양떼,

혹은 눈동자를 물들이는 바다와

세포 안으로 파고드는 바람.

그러나 영화 나니아 연대기 촬영지를 찾아

몇 해 만에 다시 간 뉴질랜드에선 사람이 보였다.

 

키위(뉴질랜드인의 별칭)들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확신이 강했고,

격식을 차리지 않았지만 예의를 잃진 않았다.

판타지 영화의 무대에서 살아가는

나니아 사람들은 따스했다.

 

 

1.카라

 

주근깨 투성이 그녀는 멋적은 듯 씩 웃었다.

그러더니 청바지에 쓱쓱 사과를 문질러 닦은 뒤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영락없는 시골 처녀 모습이었다.

 

양 2천 마리를 기르는 목장 테 탕아

쪽문 옆에서 자라던 사과나무에서

열매 다섯개를 툭툭 따낸 카라는

그 중 성한 놈 두 개를 골라

하나는 건네주고 또 하나는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그녀 손에 남은 사과들을 쳐다보자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馬)이 워낙 좋아해서요.

 

스물네살 그녀는 뉴질랜드 남섬의 작은 마을

오와카 근처 폭포들을 보여주려 했다.

그러나 가족이 목장을 직접 운영한다는 얘길 들으니

거기에 더 가고 싶어졌다.

차를 탈 때마다 양떼를 지나쳤지만

제대로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양은 겁이 많았다.

광활한 산비탈 목장 안을

카라가 모는 트럭으로 다니다가

양떼를 보면 즉시 내려 카메라를 들이댔지만,

그때마다 양들은 전력질주로 멀어졌다.

 

양이 그렇게 빠른 줄 몰랐다.

따라 뛰다가 두 번이나 진창에 빠졌다.

언덕 아래 카라가 놀리듯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

 

쑥스럽고 오기도 났지만

양을 따라 풀밭을 뛰어다니는 일은 즐거웠다.

가족 관객을 겨냥한 나니아 연대기

동물 캐릭터가 대거 등장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오즈의 마법사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그랬듯,

동물들과 함께 환상의 세계를 여행하는 이야기야말로

모두를 사로잡을 수 있는 모험담일 테니까.

 

손님을 말에 태우고 다니는 가이드 일을 주로 하는 카라와

푸라카우누이 베이에 갔다.

남섬 동남쪽 도시 더네이딘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 절경의 해안을 달려 도착한 그곳은

이 영화의 결말 부분을 찍은 곳이다.

네 남매가 왕관을 쓰는 궁전 외부는

컴퓨터그래픽으로 그려낸 것이지만,

깎아지른 절벽과 광활한 해변은

작품 속 그대로였다.

 

모든 것을 다 이룬 사자왕 아슬란이

홀로 걸어 사라져간 그 바닷가가

남쪽 끝 근처란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뉴질랜드 남단이라면

세계의 맨아래 부분이기도 했다.

저 멀리서 파도를 타는

서퍼 두 명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보드 끝에 재겨 디뎌 체험하는

세상의 끝은 어떤 느낌일까.

한없이 고요한 세계의 밑바닥은.

 

아름다운 해변과 풍요로운 농장.

헤어질 무렵 행운을 타고나셨군요라고

웃음을 머금고 말을 건넸더니

카라가 정색하고 답했다.

예전엔 몰랐다고.

그저 답답해 몇 년간 외국으로 떠돌았다고.

밖에 나가서야 스스로가 얼마나 행운아인지 깨달았다고.

다시 돌아온 그녀는 이 땅을 너무 사랑한다고.

 

행복은 맛이 강하지 않은

최상급 포도주 같은 것이다.

얕은 입맛에는 무미건조하게 느껴진다.

 

 

2.로브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무살 때 영국으로 갔다.

사이클 선수로 활약하며 나름대로 성공했다.

카라가 떠올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런데 왜 돌아왔죠?

미소와 함께 로브가 받았다.

영국에선 여름이 두 주 밖에 없거든요.

 

남섬 캔터베리 지역엔

나니아 연대기 여행상품이 나와 있었다.

영화가 공개된 지 불과 한 달만인 지난 1월 초부터였다.

반지의 제왕킹콩에서 나니아 연대기까지,

외지인에게 뉴질랜드는 온통 판타지 공간이었다.

그러나 작품 속 무대를 그들에게 소개하는

로브 같은 키위들에게

판타지는 곧 하루하루의 리얼리티였다.

 

여행객과 원주민,

남자와 여자,

그리고 나와 너.

리얼리티와 판타지를 가르는 것은 각도일 뿐

둘 사이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투어는 에드먼드가 나니아에서 맛봤던

터키 젤리를 먹어보는 것으로 시작됐다.

너무나 달콤하지만 많이 먹을 순 없는 그 맛은

그대로 환상의 맛이기도 했다.

로브는 극중 아이들이 걸쳤던 모피 코트까지 입혀줬다.

 

투어의 정점은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서쪽으로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아서즈 패스 국립공원 인근 플록 힐이었다.

네 아이들이 이끄는 아슬란 병사들과

하얀 마녀 군대가 충돌하는

클라이맥스 전투 장면을 찍은 곳이었다.

 

험준한 사유 목장에

제작진이 직접 만든 비포장도로 6㎞ 끝에서

바위들이 하나하나 살아 움직이는

양떼 같은 협곡을 만났다.

바위 아래 그늘에 앉아 점심 샌드위치를 먹을 때

산토끼가 코 앞을 가로질렀다.

 

계곡 옆으로 10여분 걷자

탁 트인 대평원이 나타났다.

맏이 피터가 돌격 명령을 내리던 바위로 갈 때

로브는 실제 쓰였던 그의 소품 칼을 가져왔다.

'아슬란이 그의 이름을 떨치는 날,

나니아엔 다시 봄이 오리라'

라고 새겨진 그 칼은 제법 묵직했다.

 

칼을 들고 바위 위에 서자

벌판을 메운 양 진영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가는 장면이 눈 앞에 펼쳐졌다.

온통 누른 벌판을 휘감고 솟아오른 바람이

칼 끝에서 웅웅거렸다.

환상이 깃든 곳은

태고의 세계였고 시원(始原)의 공간이었다.

 

차를 되돌려 상상에서 현실로 돌아올 때

화제는 더 이상 영화가 아니었다.

다시 물었더니 이번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어차피 모든 일엔 끝내야 할 때가 있잖아요.

육체적으로 격심한 사이클 선수 생활을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하자

자연스레 고향이 떠올랐어요.

 

마지막 순간에 떠오르는 것이야말로

그 사람의 삶 전체를 응축하는 상징일 것이다.

그게 공간이든 시간이든,

혹은 사람이든.

 

 

3.루크

 

그는 좀 다르다고 생각했다.

미국인이었으니까.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살던 그는

뉴질랜드 풍광에 반해 1992년 이주했다.

그러니까 당신을 키위라고 할 순 없겠네요.

익숙하게 강바닥을 찔러 노를 젓던 그가 말했다.

아뇨. 여기서 14년을 살았는데

어떻게 키위가 아닐 수 있겠어요.

 

이렇게까지 조용하고 평화로운 도시가 또 있을까.

크라이스트처치는 더없이 고즈넉했다.

벤치의 사람들은 책을 읽었고,

풀섶의 사람들은 몸을 눕혀 눈을 감았으며,

보트 타는 사람들은 그저 흐름에 배를 맡겼다.

에이번강에서 펀팅(영국식 뱃놀이)을 할 때,

도심을 가로지르는데도

급해 보이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들 모두는 시간을 초대해놓고 있었다.

문명의 아찔한 속도 속에서

필요한 것은 이런 게 아닐까.

게으름 피울 수 있는 권리,

최선이라는 말에 쫓기지 않을 권리,

주저하고 때로는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도 있는 권리.

 

물론 크라이스트처치도 천국은 아니었다.

그날 지역 신문 머릿기사는

토요일 밤마다 외곽 지역을 공포로 몰아넣는

폭주족에 대한 것이었으니까.

그래도 잠시 스쳐 지났던 이국의 도시에서

늘 서두르던 객(客)은 모처럼 평안을 얻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충분했다.

어차피 여행에서 얻는 것은

학습이라기보다는 휴식이고

각성이라기보다는 추억일테니.

 

느릿느릿 흐르는 에이번강은

좁고 얕고 또 맑았다.

아래엔 뱀장어가 헤엄쳤고

위엔 오리가 떠다녔다.

바람이 불자

갑자기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 강물을 덮었다.

주변 숲을 새삼 둘러봤더니,

세상에,

남반구의 이 아름다운 도시는

뿌리부터 잎까지 온통 가을이었다.

 

노를 거두고 잠시 뱃전에 앉은 채 루크가 물었다.

한국은 지금 날씨가 어떤가요.

떠나온 봄과 떠나갈 가을.

흘러가는 것은 시간이 아니다.

우리가 시간 속을 흘러가는 것이다.

 

 

-----

 

기사에서 언급됐던 푸라카우누이의 해변입니다. 랜드요트를 타고 있는 사람이 할아버지이고 뒤에서 따라가는 사람이 손자인데, 할아버지만 계속 타니까 손자가 결국 짜증을 부리더군요. 그제서야 두 사람이 교대를 하더라는.^^ 왼쪽에 보이는 절벽 위로 영화 속 케어 패러블이라는 궁전이 컴퓨터그래픽으로 표현됐지요.

 

 

 

 

엘리펀트 락을 찾은 김에 아예 카페트를 뒤집어쓰고 하얀 마녀 흉내를 내고 있는 소녀입니다.

 

 

 

이 사람이 루크입니다. 베니스의 곤돌라 뱃사공 같지요?

 

 

 

크라이스트처치를 대변하는 두 개의 이미지를 한번에 잡았어요. 바로 트램과 대성당이지요.

 

 

 

에이번강을 노저어가는 뱃사공입니다. 정말 세상에 이렇게 평화로운 놀이가 있나 싶더라구요.

 

 

 

 

이건 크라이스트처치 시민들의 휴식처인 헤글리 공원입니다. 가을 정취 물씬이죠? ^^

 

 

 

 

더네이든 인근에 있는 라나크 캐슬이예요. 뉴질랜드에 있는 유일한 성이라죠.

 

 

 

 

너무 길어질 것 같아 기사에는 쓰지 못했지만, 엘리펀트 락에도 들렀습니다. 두 형제가 말을 타고 다니며 검술 연습을 하고 두 자매가 활을 쏘며 연마하던 곳이었지요.

 

 

엘리펀트 락을 찾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는 모습입니다. 꼬마가 서 있는 화덕은 극중 아슬란 캠프 장면을 위해서 만든 세트의 일부입니다.

 

 

 

더네이딘에는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경사가 급한 길이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볼드윈 스트리트죠. 직접 볼 때는 까마득했는데, 사진으로 찍어놓고나니 이상하게 경사가 덜 급해 보이네요. -.-

 

 

 

두 번씩 진창에 빠져가며 찍는 양떼 사진입니다. 그나마 이게 가장 가까이서 찍은 사진이라는. -.-

 

 

 

이 사람은 로브예요. 참 사람 좋고 또 컨트리틱하게 생겼죠? ^^ 하얀 마녀가 전투 때 칼을 휘두르던 곳을 포함한 플록 힐의 계곡 지형이지요.

 

 

 

플록 힐의 비포장도로입니다. 영화 제작진들이 직접 6킬로미터에 이르는 이 도로를 만들었다죠.

 

 

 

대전투 장면을 찍은 플록 힐의 대평원이예요. 피터가 돌격을 외치던 바로 그 자리에 소품으로 쓰였던 칼을 꽂아넣느라 어찌나 힘들었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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